Excavating Future Species
Fi Jae Lee's Solo Exhibition
<Excavating Future Species>
2023.08.25 - 2023.09.16
Art Space 3, Seoul, Korea
우리가 남에게 먹히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지구의 생명이 태어난 이래 매우 최근의 일이다. 지금도 인간을 제외한 대다수의 동물들은 서로 먹고 먹히고 있다. 사자에게 목이 물려 끌려가는 가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에서 보며 우리는 측은한 마음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산 채로 먹힐 때의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에게 어떻게 먹혀야 아프지 않게 생을 마감할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다큐멘터리가 끝난 뒤 어떻게 저녁을 맛있게 먹을까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Youtube와 요리 채널에서는 어떤 식으로 재료를 배합하고 손질해야 맛이 있는지 보여준다. 스크린 뒤편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죽은 몸을 다루는 법을 알려준다.
식탁은 죽은 몸들이 모이는 장소다. 죽거나 죽어가는 몸들이 식탁에 올라온다. 그들은 조리되어 예쁜 그릇에 담겨 있다. 육해공 생물들의 공동묘지 위로 우리의 손이 제트기처럼 지나간다. 우리가 죽은 뒤 썩어감으로 다른 형태가 되듯이 식탁 위 죽은 몸들은 우리에게 먹힘으로써 새로운 몸을 얻는다.
식탁은 죽음의 장소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서 심판을 받다가 49일 후에 환생한다고 한다. 식탁은 죽은 생물들이 환생하는 곳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맛이 있는지 없는지 심판을 받다가 우리의 입으로 들어간 후 소화기관을 거쳐 다른 형태를 가진다. 이렇게 말하면 똥이 되는 것이 그들의 환생이라고 다들 생각하겠지만 꼭 물질적인 몸을 가져야만 형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어야 건강해지는지 매일같이 걱정하고 토론한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한다. 그들은 음식과 몸, 책과 생각을 분리한다. 그러나 우리는 죽은 몸들을 먹어야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오늘 내가 점심에 먹은 닭다리가 6시경의 ‘생각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가 된 것이다. 오늘 아침에 먹은 토마토가 ‘그러나’를 키보드 자판으로 입력하다가 지워버리고 지쳐버린 나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엎드리게 한다.
식탁은 이미지가 태어나는 곳이다. 죽은 것들을 먹고 마시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와 사상을 만들어낸다. 예술가들은 그와 더불어 가시적인 몸을 만든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몸에 흡수된 이미지들로 새로운 몸을 만들어왔다. 신문에서 읽은 기사나 내가 작업실과 집 안팎에서 느낀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은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그러나 이제 나의 손을 통해서 존재할 새로운 생물의 몸이 되었다. 나는 마치 창세기의 아담처럼 생물들의 몸에 모두 이름을 붙였다. 온 몸이 뜯어진 택배상자로 덮여 있는 다리가 많은 사람은 ‘바닥까지 비천해진 희망인,’ 백 개가 넘는 혀를 내밀고 있는 조개는 ‘트럼프의혀는백조개’라는 생물명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종(species) 별로 분류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드로잉하거나 찰흙으로 빚었다. 그들은 개별적인 작품이 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큰 회화작업이나 조소작업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작업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개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수 십, 수백 개의 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지층을 형성한다. 빙하기 이후 유례없이 빠르게 수많은 생물종들이 멸종되는 이 인류세 시대에 나의 동식물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나는 나의 지질시대에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라는 이름을 붙인다.
나는 이 생물들로 식탁을 차리고 싶다. 관객들에게 나의 생물들을 요리해서 먹이고 싶다. 죽었다가 식탁에서 환생한 생물들이 다시 죽고 환생하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 죽은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순환을 재현하고 싶다. 나의 개인전이 열리는 갤러리는 그림이 걸려 있고 조소작업이 놓여 있는 전형적인 공간이 아니라 관객이 먹고 마시며 또 다른 작업을 재생산할 수 있는 유기적인, 또 다른 생명체같은 공간이 될 것이다.